하와이 대저택 유튜브에서 들은 책 내용이 가슴에 와닿았다.. 죽음에 다다른 자신의 육체에게 말해주는
따듯한 메시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나왔다..
다리가 부러져 입원해있는 친구에게 영상을 보냈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바로 책을 사고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숲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 수업
-비욘드 라띠코 린데블라드 지음
아잔 자야사로 스님의 마법의 주문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x3 ”
아잔수시토스님의 말씀
“나티코 나티코 , 혼돈은 자네를 뒤흔들지 모르지만 질서는 자네를 죽일 수 있다네.
그렇습니다 저는 또다시 주먹을 너무 세게 쥐었던 것입니다 . 세상이 마땅히 어떤 모습이어야하는지 다 안다고 상상한 것이지요 ,,
세상이 이렇게 했어야 한다는 생각은 늘 저를 작고 어리석고 외롭게 만듭니다 p166-167
번뇌를 완전히 내려놓는 것은 적절한 목표가 아닙니다 .번뇌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은 죽은 사람뿐입니다171p
지금도 그 순간이 아주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아디야산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 들어보세요.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무작정 믿지 않아야 합니다. 주의가 흐트러지지않아야 합니다. 현재 상황을 온전히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은 우주가 다음과 같은 원칙에 따라 운행된다는 근본적 진실을 알 게 될 것입니다. 그 진실이 뭐냐고요?"
당신이 알아야 할 때
알아야 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이 옳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할 수는 없겠지만, 옳다는 데 저는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쓸데없는 소리처럼 들린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이 말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라 생각합니다. 이 가르침 을 들은 이래 저는 그대로 살고자 애써 왔고, 시간이 잘 수록 그 깊이를 느낍니다.
그렇게 살고자 노력할 때 제 삶은 항상 더 나아졌고, 때로는 훨씬 더 나아졌습니다. 아무렇게나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적절한 계획을 반드시 세워야 할 때조차 아무 계획도 세우지 말라는 뜻은 더더욱 아니지요. 우리가 어 쩔 수 없는 것까지 불안해하는 대신, 결국 모든 것이 순 리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사는 데 익숙해진다면 더 높은 차원의 자유와 지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미래를 통제하고 예견하려는 헛된 시도를 내려놓을 수 있 다면, 그럴 용기가 있다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약간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거의 모든 인간을 지배하 는 생각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과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생각과 미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생각이지요.
이 두 가지는 대단히 매혹적이며, 결국 같은 이름으로 불 립니다. 바로 '내 인생'이라는 이름이지요.
이는 살아가는 내내 크고 무겁고 중요한 짐 두 개를 이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에는 과거에 관한 생 각이 들어 있고, 다른 하나에는 미래에 관한 생각이 들 어 있습니다. 둘 다 멋지고 소중한 것들이 가득 든 점입 니다. 하지만 때로는 잠시 그 짐을 내려놓는다면 어떨까 요? 인생에서 좀 더 가까이 당면한 순간,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을 반갑게 맞아보는 겁니다. 짐은 어디 가지 않습 니다. 언제든 원할 때 다시 집어 들면 됩니다.
176-177p
자기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 무슨 잘못이 있겠습 니까. 다만 이따금 그 생각에서 벗어나는 데는 중요한 가 치가 있습니다. 짐을 내려놓으세요. 그리고 편히 쉬세요.
푹 쉬고 나면 짐을 더 쉽게 들 수 있어요.
생각과 통계력을 내려놓기, 내면을 돌아보고 경청하 기, 현재에 집중하기, 정기적으로 편안하게 쉬기, 신뢰하 며 살기. 이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두 생각에 휘둘리는 대신 우리의 현실에 더 깊이 뿌리내린 소중한 것들을 탐지하는 일이지요. 생각이 거품처럼 이 는 곳에서 등을 돌리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우리의 생각은 더 가치를 띠게 되지요.
우리 안의 현명한 직관이 더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합 니다.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생각 의 질이 개선됩니다.
이번엔 미래라는 흥미로운 단어를 조금 더 살펴보도 록 할까요. 그리고 미래에 일어나리라고 우리가 생각하 는 일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합시다. 미래에 관한 생각 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 리 머리가 미래에 대해서 들려주는 내용은 실제의 미래 가 아닙니다. 기억과 경험에 기반을 둔 단편적인 그림이요. 스케치일 뿐이지요. 우리는 살아오면서 실제로 벌어 진 일의 극히 일부분만 기억합니다. 게다가 그 기억은 겨 한 감정에 따라 형성되고 결정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감정적으로 두드러졌던 일, 특히 어렵 고 고통스러웠던 일을 기억하도록 프로그램이 짜여 있습 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 선조 는 사바나 초원에서 살아남고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 지만 우리가 과거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 벌어졌던 일 이 아닙니다. 흔히 감정적으로 격앙된 상황에서 선별한 단편적 조각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그 조각들은 우리 가 투영하는 미래를 위한 기초를 제공하고, 우리가 상상 하는 미래를 위한 토대가 됩니다. 그것은 미래가 아닙니 다. 우리의 가정이고 추측일 뿐이지요. 확실히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누구도요.
-이 글을 보고 생각난것 -과거는 내 무의식을 만든다..그것은 내 미래의 토대가 되지만 ”그것은 “미래가 아니다!!!!“ 우리의 가정이고 추측일 뿐이다
확실히 무슨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179p
을 잊지 마세요."
어떻게 하면 삶이 펼쳐지는 데 잘 대응할 수 있을까 요?
간단합니다. 미래의 계획과 통제와 조직에 덜 신경 쓰고 현재에 더 충실하면 됩니다. 완전한 몰입에 빠졌을 때의 기분을 아실 겁니다. 기민하게 주의를 집중하게 되 지요. 알아차림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겁니다. 순간에 몰 입할 줄 아는 사람은 닥치지도 않은 온갖 일에 대응할 방 법을 궁리하면서, 혹시나 잘못될지도 모를 상황을 미리 숙고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갈지를 끊 임없이 걱정하지도 않지요. 오히려 열린 마음으로 현재 에 충실히 대응합니다. 더 현명한 방법이지요.
통제 욕구를 내려놓고 당면한 상황을 의식하려면 불 확실성에 직면할 용기를 내야 합니다.
우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오히려 어느 정도 삶을 미리 계획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계 획을 세우는 것과 그 계획이 반드시 결실을 보아야 한다 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예전에 이런 말을 했습 니다.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하지, 계획 자체는 전혀 중 요하지 않다."
우리가 모두 진한 잉크 대신 흐릿한 연필로 일정표와
계획표를 쓴다고 상상해봅시다. 앞으로 벌어질 거라고 우리가 기록하거나 생각한 일이 실제론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점을 늘 염두에 두며 살아간다면 어떨까요그 사실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면 어떤 삶이 시작 될까요?(영적 성장의 결정적인 도약은 불확실성에 직면할 용
기를 내는 데서 이뤄집니다. 우리의 무지를 편견으로 가 리지 않을 때, 우리 마음대로 앞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참아낼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가장 현명해집니다.
삶을 뜻대로 휘두르려고 노력하는 건 끊임없이 흐르는
•물살을 맨손으로 붙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끊임없는 변화는 자연의 속성입니다.
(사원 생활은 삶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타고난 의지를 좌절시키도록 설계되었습니다.>)그래서 우리는 돈을 만지 지도 못했고, 언제 무엇을 먹을지 또 누구와 살고 어느 오두막에서 잘지 선택하지도 못했습니다. 승려가 되면 과거에는 당연한 권리였던 선택들을 모두 내려놓고 주어 진 상황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한 수행은 우리에게 놀라운 선물을 안겨줍니다! 삶이 불확실해질 때도 흔들리지 않게 해주고 앞날을 모를 때도 내면의 평 화를 지킬 수 있게 해줍니다. -불확실성에 직연할 용기 -
이 모든 것은 결국 헛된 노력을 덜 기울이며 살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다른 믿음과 미래에 덜 집 착하고, 삶이 실제로 벌어지는 유일한 장소인 지금 여기 에 더 마음을 여는 과정입니다.
실은 누구나 인간의 삶에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잘 알 것입니다. 이승에서 우리에게 분명한 것은 단 한 가지, 바로 삶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점입니다. 나머지 는 희망, 두려움, 가정, 소망, 예상, 의도 등입니다. 그 사 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저도 모르게 꾹 쥐었던 주먹 이 스르르풀리고, 펼친 손은 삶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185p-187p
모든것은 너에게서 시작한다 219p
부처님은 4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을 꼽았습니다.아 마음가짐을 온전히 갖춘 사람은 비록 속세에 몸담고 있어도 범천의 세계에 머무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아울 러 그 마음가짐 안에서 우리 안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있기도 합니다.거룩한 마음가짐 중 첫 번째는 자애metaa ,(사랑애 마음심)입니다.
두 번째는 연민karuna(슬플비 마음심) 입니다.
세 번째는 희열 mudita, (기쁠희 마음심) 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타고 난 능력으로, 다른 사람의 성공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함께 기뻐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성공 해서 행복할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으로, 다른 사람의 기쁨을 자기 기쁨으로 여기는 공감적 기쁨 empathetic joy 이 아닐까 합니다.
네 번째는 뜻밖에도 평온upakha, (버릴 사 마음심-평온한 마음을 한자로 버릴사에 마음심이라 쓰는구나..신기하다 사심)입니다. 평온은 폭 넓은 지혜를 담은 감정입니다. 흔히 알아차림이 부르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으로, 부드럽고 총명하며 깨어 있는 상태입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 모든 일이 순리대로 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가짐입니다.
이 거룩한 마음가짐들, 우리 마음속의 아름다운 안식 처들을 어떻게 기르고 넓힐 수 있을까요? 부처님은 아주 간결하고 분명하게 그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너 자신부터 시작해야 하느니라”
"항상 너 자신부터 시작해야 하느니라." 우리 자신에게 먼저 연민을 배풀 수 없다면, 다른 사 람을 향한 연민은 더더욱 부족하고 취약할 것입니다. 다 른 사람을 향한 사랑을 키우려면 우리는 애정의 방향을
• 내부로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그 점을 간과하여 정작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살아갑 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비판하고 가혹하게 대하며, 우리 자신도 연민의 대상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내 마음의 고통에 좀 더 공감하고 세심하게 살핀다면 삶을 더욱 멋지게 가꿀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무방비로 고통에 맞서기 전에 우리 자신에게 진심으로 다음과 같 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유익하지 않을까요? "내가 너 무 오랫동안 이런 기분에 시달리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 나를 도울 방법이 있을까? 내가 좀 더 평온한 마음으로 살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머리로 해결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분 나빠하면 안 돼. 이렇게 반응하면 안 돼. 너무 쉽게 의존하고 상처받고 시기하고 분개하면 안 된다고!"라고 외치는 머릿속 생각들에 온통 주의를 빼앗겨 마음속의"항상 너 자신부터 시작해야 하느니라." 우리 자신에게 먼저 연민을 배풀 수 없다면, 다른 사 람을 향한 연민은 더더욱 부족하고 취약할 것입니다. 다 른 사람을 향한 사랑을 키우려면 우리는 애정의 방향을
• 내부로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그 점을 간과하여 정작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살아갑 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비판하고 가혹하게 대하며, 우리 자신도 연민의 대상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내 마음의 고통에 좀 더 공감하고 세심하게 살핀다면 삶을 더욱 멋지게 가꿀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무방비로 고통에 맞서기 전에 우리 자신에게 진심으로 다음과 같 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유익하지 않을까요? "내가 너 무 오랫동안 이런 기분에 시달리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 나를 도울 방법이 있을까? 내가 좀 더 평온한 마음으로 살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머리로 해결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분 나빠하면 안 돼. 이렇게 반응하면 안 돼. 너무 쉽게 의존하고 상처받고 시기하고 분개하면 안 된다고!"라고 외치는 머릿속 생각들에 온통 주의를 빼앗겨 마음속의사람들은 흔히 스스로를 너무 부족하다고 여기는 맞 에 자신에게 연민을 베풀지 못합니다. 그런 감정적 보상 핌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 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느낄 때까지, 마법처럼 그런 마음 이 들 때까지 기다린다면 영원히 기다려야 할 수도 있습 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인간적인 온정과
너그러움을 허락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우며 성공해야 그 자격이 생기는 겁니까? 사소한 실수에 대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속죄해야 할까요? 손대 는 모든 것을 얼마나 완벽하게 수행해야 하는 걸까요?
우리가 그런 경지에 도달하기는 할까요?
우리는 늘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것 을 기억해야 합니다. 남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요. 때로 는 그 사실을 놓치거나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 중 대다수는 거의 언제나 이로운 존재가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늘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 니지요. 일이 잘 풀릴 때도 있고, 안 풀릴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서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바라볼 때 삶은 달라집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맺는 온갖 관계 중에서 단 하나만이 진정으로 평생 이어집니다. 바로 우리 자신 과 맺는 관계입니다. 그 관계가 연민과 온정으로 이루어 진, 사소한 실수는 용서하고 또 털어버릴 수 있는 관계라 면 어떨까요? 자기 자신을 다정하고 온화한 시선으로 바 라보고 제 단점에 대해 웃어버릴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 리고 그와 같은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과 우리가 사랑하 는 이들을 거리낌 없이 보살핀다면 또 어떨까요? 그렇게 만 된다면 세상 전체가 반드시 좀 더 좋은 곳이 될 것입 니다. 우리 안의 고귀한 마음가짐이 흘러넘칠 것입니다.2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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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승려, 계율, 이끼가 꼈을 정도로 오래된 종교에 대한 글을 읽을 때 여러분은 아마 가장 먼저 엄격한 통 제와 상시 규칙적인 일상, 제약 그리고 은둔 같은 것들 을 떠올렸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살았던 방식 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낯선 사람들의 관용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습니다. 사원 생활을 수 행이 길어질수록 그 불확실성의 정도를 고조하도록 고안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수행한 결과는 매우 유용합니다.
승려로 살며 배웠던 것을 저는 지금 '속세'에서도 거 듭 확인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우주는 모 든 것이 임의로 이루어지는 차갑고 적대적인 곳이 아닙 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우리가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은 결국 우리에게 고스란히 돌아오지요. 제가 이처럼 믿음을 말하면, 상황을 철저하게 통제하려 드는 사람일 수록 마음이 더 불편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믿 음이 주는 기쁨과 풍요로움을 놓치게 됩니다. 그리고 누 구라도 기댈 것이라곤 믿음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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